성웅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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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의 이해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외침에 대비한 결과물 중, 가장 빛나는 업적의 하나가 바로 ‘거북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거북선은 다른 전선들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뛰어난 성능과 화력으로 이순신이 출전했던 해전에서 큰 활약을 보여줬다. 이순신은 이를 이용한 해전에서 많은 적선들을 격침시켰으며, 이로 인해 조선군의 전세를 상승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물론 거북선은 이순신 혼자만이 발명한 전선은 아니었다.
거북선을 건조하는 작업에는 많은 인력과 기술자들이 참여했다.
그 가운데 실직적인 업무를 맡은 최고의 공로자는 나대용(羅大用, 1556~1612)이었다. 그는 28살에 무과에 급제하여 36살에 이순신의 막하로 들어갔으며 발포만호(鉢浦萬戶)의 임시지휘관을 맡기도 했었다.

나대용은 조선 기술뿐 아니라 전술에도 능력을 발휘하여 옥포해전에서 왜군의 전선 2척을 부쉈으며, 사천해전에는 이순신과 함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도 분전했던 용장이었다. 또한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는 창선(槍船)이라는 특수선을 고안했으며, 해추(海錐)라는 쾌속선 일종의 배도 만들었다.

[난중일기]에 나타난 거북선의 건조과정의 의미

이순신이 임진왜란 이전에 거북선 건조에 충실했다는 것은 《난중일기》에도 잘 나타나있다.

임진년 3월 27일, ‥‥거북선에서 대포쏘는 것도 실험했다. 임진년 4월 11일, ‥‥비로소 배로 돛을 만들었다. 임진년 4월 12일, 식사를 한 뒤에 배를 타고 거북선의 지자·현자포를 쏘았다.

임진년 4월 12일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바로 전 날이다. 이렇듯 거북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건조준비가 착실하게 진행되어 있었고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북선이란 명칭은 이순신이 당포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올린 장계에서 거북선(龜船)이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의 해전에서는 전선들만 화력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병사들이 적선에 올라타 싸우는 백병전(白兵戰) 역시 하나의 전술이었다. 그러므로 적들에게 아군을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승리하는데 있어 중요한 관건이었다. 거북선은 적들이 아군을 관찰할 수 없고 안에서만 밖을 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또한 천장에 해당하는 등에는 판자를 덮고 그 위에는 쇠못을 박았으며, 다시 거적을 덮어 적들이 뛰어들면 못에 찔려 죽게 되어 있었다.

기존의 전선들이 좌우로만 포를 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거북선은 선두(船頭)에 해당하는 용머리에서도 대포를 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적선들과의 충돌에도 버틸 수 있는 탄탄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어 충돌공격에도 능하여, 적진 속으로 들어가 적선들과 부딪히며 포를 발사하는 탁월한 공격능력을 구사할 수 있었다.
거북선은 16세기 말 세계의 어느 해전에서도 찾을 수 없는 매우 독특한 형태의 전함이었으며,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과학적인 전투함이었다. 특히 거북선의 건조 시기가 임진왜란 직전에 이루어짐으로써 왜군의 전법에 대한 치밀한 연구가 있었고, 이를 토대로 하여 기존 전선을 개량·개조시켰다는 데 그 의미가 더욱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