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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개요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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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는 충무공 이순신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부터 시작하여 전쟁이 끝나는 순간을 앞에 두고 노량해전(露粱海戰)에서 전사하기까지(1592. 1. 1~1598. 11. 17), 진중에서 있었던 7년간의 일을 기록한 일기이다.
《난중일기》는 두 가지의 전적이 있다. 하나는 이순신이 진중에서 친필로 기록한 초고본으로서 7책 205장이 전해지며 국보 제 76호로 지정되어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다른 하나는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실려 있는 것인데 4권(권5~권7)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이순신은 자신의 일기를 두고 특별히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난중일기》란 이름은 이순신이 전사한 후, 198년이 지난 1798년(정조19년)에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하면서 편찬자의 편의상 이름이 붙여진 데에서 연유한다.

이충무공전서

서로의 흠을 들춰내어 상대편을 몰아내고 세력을 잡으려고들 하였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일해야할 인물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조정에서 쫓겨나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것을 사화(士禍)라고 하는데 기묘년에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는 권세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조광조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 역적모의를 했다고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었다.
이순신의 할아버지인 이백록(李百祿)도 이 사건에 관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벼슬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혹독한 고초를 당하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나라가 어지럽고 집안까지도 당파싸움으로 피해를 입자,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李貞)은 책만 읽고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순신이 태어날 무렵, 공의 집안은 아주 가난하였고, 어머니 변씨 부인은 삯바느질 같은 것을 부지런히하여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갔다.
이처럼 가난한 살림을 서울에서 더이상 꾸려나가기가 힘에 겨워지자, 이순신 가족은 어머니 변씨의 친정집이 있는 지금의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면 백암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아산으로 떠나게되자 이순신은 절친한 벗인 유성룡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유성룡은 고향이 안동이었으나 당시 아버지가 서울에서 벼슬을 하게되자 가족이 나뉘어 살고 있었다.
이 다정한 두 벗, 소년대장 이순신과 글방도령 유성룡은 뒷날 임진왜란 때에 우리나라의 방패와 기둥이 되어 나라를 지켰다.
아산으로 이사온 이순신은 끝없이 펼쳐진 넓은 들과 높은 산을 마음껏 다니며, 역시 전쟁놀이를 즐겼다. 이사온 지 며칠도 되지않아 마을 소년들의 대장이 되었고, 마을 소년들은 통솔력이 뛰어나고 용감한 대장 이순신을 잘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