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이순신

성웅이순신 서브 비쥬얼 플래시입니다.

정의실천
정의를 실천하는 정신

이순신은 일생을 ‘정의(正義)를 실천하는 정신’으로 살았으며, 그 정신의 불꽃은 꺼지지 않고 전해져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정의란 ‘바른 도리’, ‘바른 행동’을 말한다. 또 지혜와 용기, 절제가 각각 법도를 지켜 조화를 이룩하는 일을 일컫는다. 그 정의는 공(共)과 사(私)를 구분하는 대의명분이 되며, 나라의 안위(安危)가 앞서는 진리 속에서의 올바른 길임을 뜻한다.

충무공은 일생을 통하여 바르고 옳은 일이면 역경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행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이로운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그릇되고 잘못된 경우라면 절대로 탐하지 않았다. 이순신은 자신의 정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파면되거나 구속되기도 하는 등, 많은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다.
이순신이 발포 만호로 있을 때, 직속상관이 되는 전라좌수사(全羅左水使) 성박(成?)이 군관을 시켜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관사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 같은 지시가 정도(正道)에 어긋남을 지적하며 단호히 거절했다

“이 땅은 나라 땅이요, 이 땅 위에 있는 이 나무는 나라의 물건입니다. 여러 해 동안 길러 온 것을 하루아침에 벨 수 없으며, 더욱이 공용이 아닌 사용으로는 벨 수 없습니다.”

이순신은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함부로 공물(公物)을 사용하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이를 함부로 어기지 않아야 한다는 의연한 태도를 보여 준 것이었다.
이순신이 훈련원 봉사로 있을 때의 일이었다. 병조판서 유정이 이순신에게 좋은 전통(箭筒 : 화살을 넣은 통)이 있음을 알고, 그것을 자기에게 줄 것을 부탁한 일이 있다.

“이 화살통을 드리기는 어렵지 않으나, 대감과 소인이 함께 더러운 누명을 받게 되니 미안합니다.”

유정 역시 그의 지적을 옳게 받아들였다.
이순신은 윗사람에게 아첨하거나 뇌물을 바치는 행동을 스스로 엄히 단속하는 청렴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나라를 위해 언제나 작은 정의라도 그것을 지키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으며, 그에 따른 자신의 의견을 절대 굽히지 않았다. 물론 그로인한 어떤 불리한 처분과 누명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항상 바른 자세로 생활했다.
또한 자신이 진중에 있을 때 아내의 병세가 위급함을 들었을 때에도 이순신은 걱정하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국사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홀로 애타는 심정을 달래며 아내의 병이 완쾌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난중일기》에 드러나 있다.

앉았다 누었다 하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촛불을 켠 채 뒤척이며 지냈다. 이른아침에 세수하고 조용히 앉아 아내의 병세가 어떤지 점을 쳐봤다.

이처럼 이순신은 자신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결코 요행을 바라거나 옳지 않은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또한 위선과 허식으로 공명을 다투지도 않았다.
오직 자신의 소신과 능력으로 모든 난관을 뚫고 나갔다. 이순신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정의를 실천하는 정신’은 나라를 위해 먼저 가치관을 확립하고 그에 따른 올바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며, 이를 몸소 실천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