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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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평가

평가

성웅 이순신을 새롭게 보게하는 외국에서의 평가들

영국의 해전사 전문가이자 해군중장이었던 G. A. 발라드는 이순신에 대하여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그의 이름은 서구 역사가들에게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공적으로 보아서 위대한 해상지휘관들 중에서도 능히 맨 앞줄을 차지할 만한 이순신(李舜臣) 제독을 낳게 한 것은 신의 섭리였다.
이순신 제독은 광범위하고 정확한 전략판단과 해군전술가로서의 특출한 기술을 갖고 있었으며, 탁월한 지휘통솔력과 전쟁의 기본정신인 그칠 줄 모르는 공격정신을 아울러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지휘한 모든 전투에 있어 그는 언제나 승리를 끝까지 추구하였으며, 그 반면에 그 용감한 공격이 결코 맹목적인 모험은 아니었다는 점은, 넬슨 제독이 기회가 있는 대로 적을 공격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다가도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이순신 제독이 넬슨 제독보다 나은 점을 가졌으니, 그것은 기계발명에 대한 비상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

같은 시대 사람인 해군중장 사토 데쓰타로오는 대좌였던 1908년에 해군대학에서 강의한 적이 있다. 그가 지은《제국국방사론(帝國國防史論)》에는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예부터 장군으로서 기정분합의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지나지 않는다.
나폴레옹이 “全 으로써 그 分을 쳤다.”고 하는 것도 이 뜻에 틀림없다.
그런데 해군장군으로서 이를 살피면 먼저 동양에 있어서는 한국의 장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장수 넬슨을 들지 않으면 안된다.
이순신은 실로 개세(蓋世)의 해장(海將)이다. 불행히도 생을 조선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용명(勇名)도 지명(智名)도 서양에 전하지 않고 있지만, 불완전하긴 해도 임진왜란에 관한 문헌을 보면, 실로 훌륭한 해군장군이다.
서양에 있어서 이에 필적할 자를 찾는다면 네델란드의 장수 드 롸이테르(Michiel de Ruyter : 1607~1678) 이상이라야 한다. 넬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 있어서 도저히 어깨를 견줄 수 없다. 이 이순신 장군은 장갑함(거북함)을 창조한 사람이며, 300년 이전에 이미 훌륭한 해군전술로써 싸운 전쟁지휘관이었다. "

이 말은 영국의 명장 넬슨도 그 업적에서는 충무공 이순신과 견줄 수 없음을 말했던 것이다. 일본의 작가 시바 료타로오(司馬遼太郞)는 ‘세계에서 가장 으뜸가는 바다의 영웅’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 이순신은 풍신수길의 군대가 조선에 침입하였을 적에, 해전에서 몽땅 무찔러 깨뜨렸다는 조선의 이름난 장수이다.
이순신은 당시의 조선의 관리들 가운데서 유일하리만치 청렴한 인물로서, 그 지휘통솔력에서나 전술능력에 있어서도, 저렇게도 충성심과 용기에 있어서도, 실제로 기적과도 같은 이상적인 군인이었다.
영국의 넬슨 이전에 있어서의 이름난 장수이기도 하거니와 세계 역사상 이순신만한 사람이 없으며,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 있어서까지도 잊혀지지 않겠지만, 도리어 일본사람의 편에서 그에게 존경심이 계승되어 명치유신기간에 해군이 창설되기까지 하였으니, 그 업적과 전술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

Military and Naval Affairs'의 종신 연구가이자, [Asia Magazine]의 군사관계 해설자인 알렉산더(Alexander Kiralfy)는 《일본해군전략(日本海軍戰略)》이라는 글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원래 육상의 인간이었던 히데요시는 이 재액이 육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함대의 실패에 의한 것이라 하여 육상과 해상의 그의 병력이 서로 지원하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일본전략의 육.해 양용의 성격을 밝혔다.
이 쓰디쓴 교훈이 일본인에게 가르친 것은 그들의 해군이론을 개정한 것이 아니고, 육상전투의 성공을 얻기 위해 시간의 낭비를 피하려는 어떤 수단을 빠뜨려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첫 침략 때에 한국에서 만약 거북함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황해의 북해안에 무적의 한국과 중국의 군함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 작전은 성공했을 것이 틀림없다. "

해군의 중요성과, 인진왜란 당시 거북선이 해전에서 보여주었던 활약에 대하여 밝히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