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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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생애 / 성웅이순신의 생애를 통해 나라사랑과 효성심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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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스페셜
역사스페셜 특별기획 2부작 李舜臣
역사의 꿈을 되살리는 새로운 눈 역사스페셜
  • 제작정보 : 프로듀서 강희중 / 작가 윤영수
  • 방송일시
    제1편 불패의 장군, 신화가 되다
    (2003년 6월 14일 토요일 20:00 ~ 21:00 KBS 1TV)
    제2편 영웅의 선택, 급류 앞에 서다
    (2003년 6월 21일 토요일 20:00 ~ 21:00 KBS 1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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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불패의 장군, 신화가 되다!
  • 주요내용

    1592 임진년 한산도. 일본수군은 이순신 함대에게 처절한 패배를 당한다.
    300년이 지난 한산도.
    일본해군이 적장 이순신을 위해 매년 진혼제를 지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왜 그들은 적국의 장수에게 고개를 숙였던 것일까?

    역사스페셜 제작진은 이순신 장군의 일본측 기록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의 15대 후손을 비롯, 두 형제가 모두 이순신 함대에게 전사한 구루시마 가문의 18대 후손을 직접 만났다. 그들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순신! 적장 이순신은 과연 어떤 인물이었나?

    이순신 1편은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한산도 제승당을 찾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592년 한산도에서 이순신에게 크게 패한 일본의 장군 와키자카 야스하루!
    그가 어떻게 이순신을 만나고, 대치하고, 전투를 벌였으며 그 후 일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적장의 시각, 적장의 독백으로 구성하였다.

  • 세부내용
    • 한산대첩 - 일본의 '이순신 제거작전' 이었다 !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는데 큰공을 세운 히데요시 최측근 심복, '칠인의 창(七本槍)' 중 한 명이다. 임진왜란 초기에는 용인에서 단 2천명으로 10만 조선군을 물리치는 놀라운 전과를 세운다. 용인전투 대활약 후 와키자카는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는다. "이순신을 제거하라!" 와키자카는 73척의 함대를 이끌고 한산도로 향한다.

    • 한산대첩 - 朝·日 최정예수군, 최초의 정면대결 !

      한산대첩은 조선과 일본의 최정예 수군이 바다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정면대결이었다.
      조총부대를 앞세워 백병전에 강했던 일본군은 전쟁영웅 와키자카를 지휘관으로 삼아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러나 최정예 일본수군도 적의 진용과 지리,지형을 과학적으로 절묘하게 이용한 이순신병법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역사스페셜에서는 이순신병법의 결정판인 한산대첩을 '이순신장군의 장계'와 '와키자카記(脇坂記)'의 내용을 바탕으로 재연하였다. 전투상황 재연을 위해서 실물 크기의 배가 제작되었고,그밖에 특수촬영과 컴퓨터그래픽을 이용. 일본·조선함대의 출동과 학익진의 전개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

    • 한산대첩 - 7년전쟁의 승부를 갈랐다 !

      한산대첩의 결과 와키자카의 함대는 거의 전멸한다.
      이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바다에서는 더 이상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 '해전금지령'을 내린다. 바다에서의 패배란 일본군에게는 보급로가 막히는 등 치명적인 것이었다. 일본은 훗날『근세일본국민사』에 "이 전투의 패배로 일본군은 반신불수가 되었고, 조선정벌은 사망선고를 받았다" 고 기록한다.

    • 패전으로 일본이 얻어간 전리품(?)... '학익진'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도고제독의 정(丁)자전법.
      이것이 한산대첩의 이순신병법에서 배워간 것이라는 일본학계의 주장이 있다. 와키자카記(脇坂記)에 '초승달모양으로 둘러쌌다'고 기록하고있는 이순신의 전법! 바로 '학익진'이다. 메이지시대 일본 해군 창설과 함께 일본에서 활발하게 연구된 '이순신병법'. 도고제독은 스스로를 이순신의 제자라 칭한다.
      그리고 일본해군은 한산해전을 높게 평가하여 전투가 열렸던 한산도를 매년 찾아 이순신 장군에게 진혼제를 올린다.
      왜 그들은 그토록 이순신에 주목했던 것일까? 일본의 '이순신병법' 연구, 그 내막을 샅샅이 들여다본다.

02 영웅의 선택, 급류 앞에 서다!
  • 주요내용

    불패의 장군 이순신.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한 전투조건을 조성한 뒤 전투를 펼친 지장(智將)이었다.
    그리고 그는 7년전쟁 동안 단 한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 승리의 뒤에는 언제나 피와 땀으로 맺어진 '선택'이 있었다.
    급류에 휩쓸려 가는 朝鮮의 운명 앞에서 이순신 장군의 '선택'은 견내량, 명량, 노량...... 언제나 '급류'였다.
    그리고 그 선택은 급류 속에서 조국을 지켜냈다.

  • 세부내용
    • "견내량을 지켜라!"

      한산대첩의 승리 직후 이순신은 적의 심장부 부산을 공격한다. 부산은 평양,함경도로 연결되는 일본 보급로의 시작점. 일본군은 타격을 입는다. 그 후 일본군은 부산을 지키기 위해 진해,거제 등지에 왜성을 쌓아나가고, 전라 진출을 모색한다. 위기상황! 이순신의 선택은 견내량 이었다. 좁은 길목 견내량이라면 적은 병력으로 많은 일본군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순신의 결정은 적중했다. 견내량을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조선군과 일본군은 한치의 물러섬 없이 팽팽한 대치를 이룬다. 그리고 일본군은 무려 4년동안 부산,거제 일대에서 한발짝도 진격하지 못했다!

    • "수군해체는 곧 전쟁패배."

      4년동안 팽팽했던 대치상황은 朝鮮의 원균함대의 선제공격으로 막을 내리고, 조선군은 일본의 작전대로 전멸한다. 이순신 백의종군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급기야 조정은 수군해체를 명한다. 7년전쟁 중 최고의 위기상황! 그러나 이순신은 냉철했다. 이순신은 전멸한 조선수군에서 승리의 희망을 보았고 '수군해체'를 반대한다. 그리고 조정을 설득하여 각지로 흩어진 군사와 병장기를 모아 수군재정비에 나선다.

    •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적이 남해의 서쪽 끝자락에 다다랐다. 적군은 서해진출을, 조선은 전쟁패배를 눈앞에 둔 상황이다. 적의 함대는 10배가 넘었고, 그들은 조선 앞바다의 조류(潮流)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또 다시 기로에 선 이순신. 그의 선택은 명량 이었다. 모든 상황이 열세였던 이순신의 함대. 어떻게 10배가 넘는 일본군을 이길 수 있었나?
      일본군의 서해진출이라는 위기일발의 상황을 극적으로 넘긴 명량대첩! 역사스페셜에서 그 승리의 비밀을 파헤친다.

    • "절대 그냥 보낼 수 없다."

      이 땅과 백성을 유린한 '적'이 달아나고 있다. 조선을 황폐하게 만든 그들을 온전히 고향에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러나 달아나는 적과의 전투를 앞둔 이순신. 다른 전투 때와 같을 수 없었다. 치밀한 전략도 세울 수도, 완벽한 진용을 갖출 수도 없었다. 도망가는 적과 부산에서 오는 지원군 사이에서 포위 당할 위기의 상황! 이순신의 마지막 선택은 급류가 흐르는 남해의 좁은 해협, 노량 이었다. 그곳에서 7년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고 큰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노량의 급류 속에 지고 말았다..